스페인 알람브라궁전

역사와 시를 좋아하는 여행자에겐 숭배의 대상 알람브라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입력 : 2016.04.28 04:00

 

이미지 크게보기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을 정원 헤네랄리페에서 바라봤다. 십자가가 서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왼편) 옆으로 15세기까지 그라나다를 지배했던 아랍 왕조의 나사리 궁과 요새 알카사바가 보인다. 나사리 궁 뒤로는 르네상스 양식의 카를로스 5세 궁전이 있다. /양지호 기자
"그라나다를 잃는 것보다 알람브라 궁전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

그라나다를 지배했던 마지막 아랍 왕조인 나사리 왕국(1231~1492)의 마지막 왕 보압딜은 1492년 1월 2일 스페인을 공동 통치하던 부부(夫婦) 군주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게 그라나다를 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붉은 성(城)'이란 뜻의 알람브라 궁전은 아프리카로 물러난 아랍인들이 스페인에 남기고 간 문화유산이다.

보통 알람브라 궁전이라 하면 요새 알카사바, 나사리 왕조의 나사리 궁, 정원 헤네랄리페, 카를로스 5세 궁전, 산타 마리아 성당,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을 통칭한다. 핵심은 아라베스크 양식의 꽃이라 불리는 나사리 궁. 정복 군주 입장에서는 이교도의 건축물이었지만 파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그라나다에 있던 모스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그라나다 대성당을 지은 이사벨라 여왕도 알람브라 궁전에는 크게 손을 대지 않았다. 이사벨라와 페르난도의 후계자 카를로스 5세는 아예 그라나다에 눌러 살고 싶다며 카를로스 5세 궁전을 나사리 궁에 붙여 지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도리아·이오니아·코린트식 양식이 뒤섞인 르네상스식 건물(카를로스 5세 궁)이 아라베스크 양식과 모카라베(종유석을 닮은 아랍식 건물 천장 장식법)로 뒤덮은 나사리 궁이 '알람브라 궁전'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공존한다.

나사리 궁에는 아랍어 캘리그래피로 알라를 찬양하는 글귀가 곳곳에 쓰여 있는데, 100m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다.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지하는 터라 성자는커녕 동물 그림조차 없는 나사리 궁 안 '사자의 중정(中庭)'에는 12마리의 사자 형상이 입에서 분수를 뿜어낸다. 일부 학자는 "12마리의 사자는 유대인의 12지파를 의미한다"며 유대인으로부터 나사리 왕조가 받은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헤네랄리페에 있는 아세키아 중정 분수 앞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수로 양쪽에서 24개의 분수가 물줄기를 뽑아내고 있다. /양지호 기자
나사리 궁은 알수록 더 보이는 양파 같은 공간이다. 아라베스크 문양과 아줄레호(푸른색 타일) 같은 외면을 바라보기 시작해서 더 들어가면 사자의 샘에 새겨진 아랍어 문양과 젤루지(미늘살 창문)라고 하는 통풍과 블라인드를 겸하는 아랍식 창문 양식이 들어온다. 알람브라 궁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나사리 궁은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해 한 시간 내외로 돌아보게 된다. 찬찬히 살펴볼수록 많이 보이는 곳이라 아쉽다.

나사리 궁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헤네랄리페 정원은 낙원을 지상에 구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5월이면 꽃으로 만발하는 이 정원은 아랍 왕들이 여름이면 쉬러 왔던 여름 별장이라는 설도 있다. 세로형 정원의 중앙에 수로를 설치했고 좌우로 분수를 뒀다. 12세기 당시에 벌써 그라나다 인근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발원한 물을 수로를 통해 끌어와 정원을 가꿨다.

스페인 왕실이 힘을 잃으면서 한때 폐허가 됐던 알람브라는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이 알람브라 궁에 머무르면서 궁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낸 소설집 '알람브라의 이야기(1832)' 덕분에 다시 빛을 봤다. 폐허는 문화유산이자 관광 명소가 됐다. 스페인 정부는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예술가들도 알람브라 궁전에서 영감을 얻었다. 클로드 드뷔시는 알람브라 초입에 있는 '포도주의 문'을 그린 엽서에 영감을 받아 라 푸에르타 델 비노(La Puerta del Vino)를 작곡했다. 스페인의 음악가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클래식 기타 연주곡을 작곡했다.

알람브라 궁전의 전경은 맞은편 언덕에 있는 알바이신지구에서 잘 보인다. 이곳 산니콜라스 전망대와 산크리스토발 전망대가 명소로 꼽힌다. 해질녘에 붉은 성이라는 이름처럼 붉게 물든 알람브라를 보면 어빙의 말에 찬성하게 된다. "알람브라는 역사와 시를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숭배의 대상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