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기억들(3) - 東溪, 김선욱동문

남기고 싶은 기억들(3)

 

 

* 가을 밤의 愁想 *

 

東溪,  김 선 욱(마티아)

         

 

무심히 한장씩 넘기던 달력을 마지막 남은 한장을 넘기면서

오랬동안 잊고 지내던 한국의 내 고향 산천과 친척, 친지들의

얼굴과 정겨운 모습들이 아련하게 기억속에 떠오른다.

 

우리들은 태평양  건너 지구를 반바퀴 돌아서 와 미국땅에서 살고 있지만,

태어난 곳이 한국이라 마음 한쪽은 늘 한국으로 향해 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동물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이나 자란 곳으로

귀환 하려는 귀소의 본능이 있다 한다.

어린시절 우리가 살던 집 처마 밑에서 둥지를 틀고

봄소식을 알리던 제비와 같이 철새들은 몇만리를 날아서

자기들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 가고,

물고기인 연어나 뱀장어들도 몇천리나 되는 거리를

위험을 무릅쓰고 헤엄을 쳐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서

후세를 위해 산란을 한후에 죽는다.

 

우리들은 이민을 와서 지금은 많이 수월 해졌지만

힘들게 긴시간을 기다려 국제통화를 해야했고,

비싼요금의 우편료를 부담해야 했으며

한국과 상당한 거리감을 갖고 지내 왔었다.

 

그 후 몇년에 한번씩 혼자서 또는 가족이 함께

그 긴긴 14시간 동안을 그 좁은 비행기 속에서 갇혀

꿈에도 그립고 그리웁던 고국땅을 향해 가곤 한다.

무슨 큰 중요한 일도, 대단한 임무를 띄고 가는 것도 아니면서,

그리움 만을 가슴에 안고 그냥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태어난 2세나 1.5세들은

고국에 대한 아련한 감정이 없다.

따라서 여기서도 부모들과 매일 매일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

나가지 못하고 자란애들은 마음의 고향이 없어서

귀소본능을 갖지 못하니 년말이나 홀리데이가 되어도

무감각한 상태의 방랑자로 되 버리는 것 같다.

 

매년 한국의 대 명절인 추석이나 년말 새해에는

귀성객으로 고속도로가 만원이 되어 완행열차 굴러가듯 하고

천만명 이상의 국민이 대 이동을 하니

이것이 바로 귀소본능의 기본 감정으로 두고온 산천과

고향의 가족친지를 그리는 마음때문이 아닌가...

혈육간에 친구간에 안부를 묻고 정담을 나누며

인생을 음미하고 서로 감사하는 시간을 갖어서 얻어진

그 힘으로 또 몇개월간은 열심히 삶의 터전에서 

노력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곳 미국의 추수 감사절에도 TV 뉴스 화면을 보면

명절의 대 이동으로 수 많은 곳에서 교통사고가 나고 하면서도

고향을 찾아 가곤 한다.

이 크나큰 대지에서도 남과 북 또 동과 서로 집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 해야 하는 타향살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내가 잘 알고 친하게 지내는 미국인 하나는

자기 부모가 남부에서 북부인 이곳으로 이주해 와

자기는 어린시절을 보낸 남부에서 넉넉치 못하였지만,

시골 냄새 풍기는 전원도시를 늘 동경하며 자랐다고 했다.

자기 고향 이야기를 할때면 신바람이 나서

자기 기억을 총동원해서 자랑을 하며

그 곳에 남아서 살고 있는 사돈의 팔촌의 이름까지 늘어 놓곤 한다.

 

세상살이가 힘들어 지고 바쁘고 또 인심도 각박해져서

친족간에도 자주 만날 수 없는 현실이 퍽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미국인들은  다 각각 바쁘고 짜여져 있는 스케쥴에

직장생활을 하던 개인사업을 하던 "훼밀리 리유니온(Family Reunion)"이라고 하는

가족 친족들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 해서,

매년 또는 격년으로 기쁨과 반가움으로,

하루 또는 몇일씩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본다.

보기에도 듣기에도 얼마나 눈물 겹도록 멋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집을 떠나 그리움 속에 사는 이들이 즐겨 부르던 "고향의 푸른 잔듸" 노래를

탐 죤스라는 가수가 월남전때 부르던 기억이 퍽 오래전 부터인데,

그 노래는 번역해서  우리 한인들 모임에서도 어느 니는

목청을 높일데로 열창을 하는 것을 본다. 많은 박수를 받으며 합창도 하고..

 

현 세대의 복잡하고 이기적인 생활들이 인간으로서의 

순수한 감정들을 더욱 매마르게 하여 삭막함을 느낌에,

더욱 고향이나 혈육 친척들이 그립고 

그 속에서 마음의 위안과 풍요로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하나 둘 떠나간 자리는 집안공간뿐만 아니라

부모의 마음속에도 더 큰 빈 공간을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에 타성적인  그 날 그 날의 삶이

내일도 계속 이어져 갈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어 왔음을 인식할 때는

이미 늦은 밤 떠나가는 막차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허전함과 쓸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가 보다.

 

후세 교육에 대한 이야기 중 하나가 어떤 여건에서든

어릴때 부모가 무조건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 주고

잘 못해도 오냐오냐 하고 꾸지람이나 반성의 기회를 주지 않고

무관심 속에 기른애들이 훗날 부모에게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부모의 엄격함 아래서 성장한 애들이 더욱 더 다정하고

가족간의 애정이 깊은 것으로 나타난다.

 

낯설은 이국에서의 생활이 일정기간 어려움 속에 지내다가

조금 기반이 닦이고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부부간이나 자식들과의 가족관계에서 그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모든게 제일 주의로만 감싸고 도는

착각속에서 지내는 이웃들을 종종 본다.

 

그러나 나의 주위에 친지들은 보편적으로 자녀들을 생활속에

깊은 신앙을 독려하여 엄격하면서도 자상하게

참 사랑 속에서 성장 시키는 걸 보면서 많은 공감과

나 자신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줌에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근래에는 해가 갈수록 친지 이웃들의 자녀의 결혼식 초대에 가서

오랜 세월 동안 공들여 일군 인생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가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기쁨을 나누며 진정으로 흐뭇한 마음을 가슴 깊이 담고

되돌아 오곤 한다.

 

어차피 우리가 선택한 이국에서의 이민 생활이고

더불어 사는 인생이라 늘 나의 기도 속에는

나만의 바램을 위하여 축원하는 바가 있다.

 

 자식들이 이 사회에서 태어나 배우면서 성장하였으니

한국 문화와 전통을 접할 기회가 많지 못하고 

또 우리의 고유 풍습을 이어가기에는 좀 어색하여 미숙함이 있어도 좋다.

 

역사에 나오는 어느 타 민족 같은 유랑인들이 아니라

우리는 이 미국에서 자자손손이 영구히

이 나라 이 사회에서 떳떳하고 당당한 국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다만 우리는 한민족( 한국인)의 뿌리를 두고 있다는

자긍심만은 잊지 말라고 당부 하고 싶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모처럼 밝은 달을 쳐다 보면서 향수에 젖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현주소, 인생의 좌표가 무엇인가를 생각 해 보며

참 행복이 무엇인가를 짚어 보는 축복된 시간 인것 같다.

 

 

가슴 깊은 곳에 그리움을 안고서,,,

 

 

                                           2003년 11월 가을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