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영의... 페루편 (4)

앞의 제 3편에서 계속

 

페루를 가다 (제 4편)

 

“마추비추”를 찾아서 계속

 

이렇게 높은 고지에 건축된 잉카 제국의 유적지에는 15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멸망당하기 전까지 170채여의 주거지 와 2000명이상의 잉카인들이 생활했을 것이란 추정이 근래에 발굴된 각종 자료에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잉카시대 마추비추지역에 샘물을 공급하던 장소(태양신전 옆)

 

문자가 없던 시대라 기록이 없어 정확한 사실을 입증할 수는 없다지만, 노르웨이 학자 ‘하이에르’주장에 의하면, 1431-71 yr. 잉카제국의 가장 명성을 떨쳤던 제 9대 황제 ‘Pachakute(이름을 쉽게 발음하기 위해 ’삐까번쩍‘이라고 소리를 내라는 안내의 농담에 한바탕 웃음)의 여름•겨울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이곳을 만든 목적은 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한 종교적 중심지(탱양신전 존재, 미라 만드는 곳과 제단이 있으며, 미라가 동쪽을 향해 쪼구려 앉아있는 자세로 묻혀 있는 것을 출토), 또는 귀족들의 유흥 처로 성처녀 집단 거주지(처녀 유골 근거제시)로 만들어 놓았다는 설을 제시 하고 있으나 모두 가설일 뿐이다.

  

                    마추피추- 콘도르상의 자연 암석

 

이곳 유적 건축물은 귀족의 것은 자연석을 부착제 없이(일반인들은 돌 사이에 부착제 사용)정교하게 쌓아 올렸고 이곳도 ‘산토도밍고 성당’에 있는 잉카 유적전시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거대한 자연석을 깎아 위로 올리면서 5도 각도로 안으로 균형 있게 기울게 쌓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5도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떤 신전은 파인 홀에 소리를 보내면 그 소리가 천정이 없는 홀에 울림으로 퍼져 오리귀에 되돌아 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 신비를 더했다.

 


 

 

음향이 울리도록 설계된 건축물

 

마을 입구의 성벽 입구는 안전장치를 위해 돌에 구멍을 내고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잠금 장치를 해 놓았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당시에도 치안엔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이러한 유적을 통하여 그들의 건축물에서 근대식 대문을 연상케 한다.

마을입구 정문에 잠금장치의 구멍 흔적

 

모퉁이를 돌아 내려가니 거대한 독수리가 양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의 콘도르의 신전이 있었고 그 신전에서 미라를 만들었다는 제단도 있었다. 이들의 신전의 특색은 동쪽으로 3개의 문이 있다는 것과 사람이 죽으면 쪼그린 자세로 미라를 만들어 동쪽을 바라보게 안치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왕녀의 신전, 잉카시대 ‘마추비추’ 온 마을의 물을 공급하는 통로가 연결 되었다는 태양의 신전 등을 둘러보고 여기저기서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오후 1시쯤 그 유적지를 하산했다.

‘마추비추=Old“ 유적지

 

‘와이나 비치=Young’ 유적지, 앞에 와이나비추와 닮은 작은 바위

 

다시 기차를 이용 호텔에 돌아가기 전에 안내는 우리를 ‘올랸타이’지역의 원주민 마을로 안내 했다.

원주민 가옥 안뜰

 

좁은 골목길에 여기저기 붉은 색깔의 프라스틱을 씌운 막대기를 문 앞에 걸어 놓아 옥수수 막걸리주막임을 알리고 있었고, 안내된 낡은 건물엔 4각형 방향으로 가옥이 지어져 있고, 뜰 가운데 정방형 마당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원주민이 작은 자판대를 마련해놓고 기념품을 팔기도 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 한쪽에는 Quinea pig (쥐과)란 애완용 동물을 무더기로 기르고 있었다.

애완용으로 키워야 할동물을 이들은 식용으로 키우고 있다 했다.

여인들이 붉은 의상에 어린 아이를 업고 등산용 모자와 스웨터 등을 팔기위하여 관광객을 따라 다니고 있었다. 왼지 이들 영세 원주민 들을 보니 가슴이 찡해진다.

 

페루를 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