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이야기
쿠바가 미국과 수교를 앞두면서 지난해부터 부분적인 개방을 하여 이제는 민간인도 자유롭게 쿠바를 여행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여행사도 좋은 쿠바여행프로그램을 소개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저희 손님께서 보내주신 쿠바에 대한 한면입니다. 더 많은 쿠바 이야기거리를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큐바 이야기
아무래도 Cuban cigar와 sugar cane 등 농산물외에는... 제생각에는 관광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나라인듯보입니다 얼마전 tv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카스트로와 악수를 하는 장면을보고 이런일도 있네... 라고 생각했는데요.몇년전에 만해도 지금과는 달랐겠지요. 임바고(embargo) 때문에 미국산 새차가 못들어가니 폐차란 없고 오래된 차를 손보고 계속고쳐 쓰고 없는 부품은 자기들이 만들어서 쓴답니다. 길거리에 나가면 온통 사방에 오래된 자동차들로 마치 미국의 50-60년대를 연상시킨다 면서요. 사람들이 순박하고 거리마다 흥겨운 음악, 맛있는 음식들 거의 organic이라고하네요. 가는곳마다 느낀 건 컬쳐가 fascinating! 이란게 그의 표현이구요. 개발이 덜 되어서 현대적인 편리함은 부족해서 다소 불편하였겠으나... 과거로 돌아간듯 색다른 매력과 재미가 있어 너무 만족스럽다더니 한번을 더 다녀오더군요. 아무래도 생필품이 부족하여서 떠날때 가져갔던 남은물건과 샴푸라던지 호텔에서 준 1회용품 같은 것들을 현지인에게 주니 좋아하더랍니다. 오랫동안 교류가 단절된 나라라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호기심도 있구요 . 왕래가 활발해 지면 나중에 혹시 가보게 될런지도 모르겠네요. ㅎ 오바마는 다음달에 큐바를 방문할 예정이랍니다.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동지 헤르니모 임(천택)
쿠바내 한인들은 1905년 4월 1033명이 영국선박 일포드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반도 메리다항에 도착해 에네켄 농장에 분산되어 4년간의 계약노동을 하게 된 것에서 시작된다. 가혹했던 노예적 노동이었고 계약기간이 끝나고 여기저기 흩어져 살다가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 1921년 쿠바로 이동했던 288명의 후손들이다. 초기부터 마탄사스 지방에 주로 정착했고 아바나로 이주한 코레아노들도 있다.
그 중에 대한국민회 쿠바지방회장이었던 헤르니모 임(천택. 19997년 대한민국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대전 현충원 안장)은 동학도(천도교 쿠바교구장)로서 독립운동에도 헌신했던 분이다. 쿠바한인회는 독립자금을 모아 중국계은행을 통해 임시정부의 김구에게 송금했었다.
그의 장남 헤레니모 임(은조. 1926-2006)는 한인 최초의 종합대학 입학자이자 아바나대학 법학부 카스트로의 동료로 7.26 몬카타병영 습격사건으로 시작된 혁명투쟁에 참가했고 혁명 후 경찰청을 거쳐 3년간 산업부에서 체게바라 가까이서 근무했었다. 그 후 여러 공직을 거쳐 정년퇴직후 동아바나 인민위원장(차관급)으로 활동했었고 생계를 위해 택시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 때 택시기사를 하면서 쿠바 곳곳에 흩어져 살던 한인들을 파악해 ‘큐바이민사’를 발간하기도 했다. 남북한을 모두 방문했었다. 쿠바한인회 회장을 지냈고 그의 손녀 아자리아가 대전 한남대에 유학중인데 ‘아자리아의 아리랑’(2013. 8 KBS 파노라마)에 소개되어 있다. 2014년 현재 1천여명의 한인 후손들이 살고 있다.
아바나에서 만난 쿠바 한인회 안토니오 김
2014년 1월 아바나 시내 중국식 레스토랑에서 쿠바한인 후손인 안티니오 김 대표(한인 3세. 마탄사스의 아리랑 YTN)와 박 부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외모로도 동양인으로 인식될 수 있을 정도였고 소수로 차별 받지는 않았다고 하셨다. 깔끔한 복장에 노년의 품격과 여유를 느끼게 해 주셨다. 쿠바는 백인 흑인 뮬라토 등 피부색이 다양하고 차별이 없는 인종전시장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 2014년 1월 아바나 식당에서 안토니오 김대표(우측)와 저녁식사중 박선봉님의 노래
원래 멕시코에서 출발해 도착한 곳은 마나티항인데 쿠바 사탕수수가격이 폭락하면서 에네켄농장이 있는 중서부의 카르데나스와 마탄사스로 이동해 정착하게 된 것이다. 카르데나스 지역에 3백명이 거주하고 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건강하셨고 반갑게 인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워 조금씩 한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동안 한국 정부와 기업 등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고 고마워 하셨다. 나오기로 한 손녀딸이 오지 못해 아쉬웠지만 가지고 간 소주로 건배도 했고 김치를 준비해 오셔서 우리가 가져간 김치도 함께 내놓고 함께 반가운 식사를 했다.
호세마르티 클럽(한국문화원) 방문
2015년 6월 호세 마르티 문화원 한-쿠바클럽을 방문했다. 안토니오 김 대표와 반갑게 재회 인사를 했다. 쿠바는 개별 단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화원 내 하나의 클럽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주택을 개조해서 지난해 8.15에 개원했고 평화통일자문회의 한쿠바협회 김이수대표 개인사업중인 전 코트라 지사장 등의 도움으로 2600페소(260만원) 월세와 인건비를 내면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 2015년 6월 호세마르티 문화원 한-쿠바클럽에서
중남미 교포들의 도움으로 마련된 꽤 커다란 건물 입구의 호세마르티 전시관 이주전시관 한국소개관 도서관 비디오 감상실등 여러 가지 용도의 방들을 만들어두고 있었다. 한인 후손만이 아니라 쿠바노들도 많이 온다고 한다. 비디오도 보고 한국어도 배운다고 한다. 한국드라마 등의 영향도 있어 한류 열풍이 꽤 불고 있고 대장금 같은 역사물보다 현대드라마가 더 인기라고 한다. 가지고 간 책 몇 권을 기증하고 AOK(Action for One Korea) 통일보자기를 들고 기념촬영하고서 기증했더니 벽에 게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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