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영의... 페루편 (5)

페루를 가다 (4)에서 계속

 

페루를 가다(제 5편)

 

“탐보이 마챠(Tambomachay) 그리고 켄코(Q'enqo)”를 둘러 보다.

 

아침 8시 호텔을 나와 해발 3,765 m 고원지대에 '푸카푸카라’ ‘잉카제국의 목욕 터가 있는

’탐보이마챠(DeTambomachay)’를 찾아 가기로 했다.

 

해발 3,765m ‘탐보이마챠(DeTambomachay)’ 입구에서

 

 이곳역시 고원 지대라 산에 오르기 힘든 사람은 버스에 머물기로 했다.

뉴왁 공항에서 사고당한 아내의 친구는 쉴새 없이 움직이는 여행 일정에 고통이 더해 가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내색하지 않고 일정에 잘 따라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걷어 올라가는 데가 많다보니 어쩔수 없이 일행을 따라 나서지 못하고 버스에 대기 하고 있기로 했다.

그러나 여행에서 이런 고생은 좋은 추억이 되어 여행의 멋을 더해 주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비주류들? 그러나 여행을 통해 주류들과 가까워 졌다.

 

모두들 여행의 멋을 아는 지라 하나라도 더 보겠다며 기권하지 않고 안내를 따라나섰다.

입구에는 해발 3,756 m라는 작은 푯말을 꽂아 놓았다. 여행객들에게 고지대를 알리고  뛰지 말라는 경고의 싸인과도 같았다. 일행은 약간은 긴장된 모습으로 ’탐보이마챠(De Tambomachay )’  입구 보다 더 높다는 ‘푸카푸카라’ 라는 잉카제국의 목욕터로 올라 가기전에 입구 해발 3.756m라 표기된 푯말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나서 안내를 따라 안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목욕 터 까지 올라가는 억척을 부렸다.

이렇게 목욕터를 정복 하고 나서야 일행은 다소 지친 모습으로 목욕터에서 터덜 거리며 입구로 다시 내려 왔다.  

정상을 정복하고 다소 지친 모습으로 내려오는 일행들(중간에 노점상)

 


원주민 들이 가축을 데리고 나와 모델이 되어 주고 있다.

 

이곳 입구에는 현지인이 그들이 키우는 가축들을 데리고 나와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모델이 되고 팁을 받기 위해서다. 한번 모델이 되어 사진을 촬영하게 하는데 1불이란다. 

그리고 산중턱에는 자리를 펴고 노점상도 차리고 있었다. 거의 모든 관광객들이 상품을 뒤적이다 그대로 발길을 돌린다. 사람 사는 게 그리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내려오다 보니 입구에 껍질을 벗고 있는 이상한 나무가 줄지어 서있었다.

 

 

 

흡사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양나무 같다고 생각 되었는데 붉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안내에게 물으니 “깨우냐”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나무로 비누나 향료의 원료로 사용한다고 했다.

 

"켄코"를 찾아서

 

’탐보이마챠(De Tambomachay )’를 나와 우리는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뱀 길이라는 신전 ‘켄코(Q'enqo)’로 자리를 옮겼다.

 

'켄코'의 바위 사이로 난 미로

 

“켄코”는 미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안내는 이를 쉽게 뱀길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바위와 바위사이가 천연 동굴을 이루어 마치 뱀처럼 꾸불꾸불해서 부친 이름 같았다.

일행은 동굴 사이를 꾸불꾸불 줄을 지어 지나기도 했다. 잉카시절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내던 암석 제단이 있었다. 제물의 피를 태양신의 제상위에 부어 바위 위에 뱀 길 같이 골을 타고 지그재그로 끝까지 내려오면 길조라 믿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미라를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그 동굴을 나오면서 산모퉁이를 돌아 계곡 아래로 붉은 기와 색깔로 시가지를 덮은 그림같이 아담한 도시 ‘꾸스꼬’시가지가 내려다 보였다.

 

페루의 '꾸스코'시가지 전경

 

'꾸스꼬' 시가지를 내려다 보며 필자

 

그러나 막상 시가지로 내려와 버스 창밖으로 살펴보니 산등성이에서 그렇게 그림같이 아름답게 보이던 ‘꾸스꼬’ 시가지도 추한 모습을 노출 하고 있었다.

붉은 기와의 1-2층 건물이 대부분이었는데 미완성 건물이 많이 보여 시가지가 우중충해 보였다. 고층건물이 없는 것은 지진의 우려 때문이란다.

특색은 멀리 산등성이 위까지도 이런 집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우리나라 6.25 직후의 판자촌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은 만큼 깨끗한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왜 이들은 넓은 땅 덩어리를 두고 어렵게 산등성이 산비탈 까지 올라가 집을 지어야 하는가? 였다.

필자가 보기에는 놀고 있는 넓은 땅들이 많아 보이는데----.

 

요새와 선전 “삭사이만”

 

안내는 우리를 다시 ‘삭사이와만(Saqaywaman)’으로 안내했다. 

고대 잉카인들이 방어용의 성벽으로 그리고 태양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신전으로 지그재그로 구축되어 있었다.

이곳은 입구부터 거대한 자연 원석으로 쌓은 길이 360m/ 높이 18m의 웅장한 성벽이 우리를 위협하듯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어디보자 '이곳이 어디더라....'(삭사이만 입구)

 

'삭사이만' 성벽에서 일핸들.....

 

 

성벽은 고대부터 태양신의 축제 장소로 활용되어 침략자로부터 지역을 방어 하는 구실을 충실이 수행했을 것이고, 지금도 매년 6월 24일 태양의 신에게 바치는 축제를 위해 대형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삭사이만' 성벽 앞 잔디 광장에서 "여대 동창생들-그들은 아직도 할머니 소녀 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은 여행지로 관광객을 모아들여 외화를 벌어 드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벽은 거의 검정색을 띠고 있지만 거대 바위 하나하나가 아직 까지 산뜻함을 발하고 있어 근래에 건축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저 성벽을 잉카인들이 맨손으로 건축 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잉카당시 인간의 손으로 접착제도 없이 바위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깎아 맞물리게 쌓아 올린 성벽의 건축 기교는 무슨 형용사를 동원해도 부족하여 감탄 이외에 할 말이 없었다.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카메라 샷터를 눌러 댈 뿐이다

 

이곳에서 아쉬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아르마스광장’으로 직행했다.

‘아르마스’라는 이름의 ‘아르’의 뜻은 ‘암=무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 왕년에 요새로 사용한 곳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고 했다.

아르마르광장 앞에서

 

광장 주위에는 성당이 10개 정도 둘러싸여 있었다.

원래 이곳은 관광 계획에 없는 곳이라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나오는 길에 성당 주위만 둘러보면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꼬스꼬’ 공항으로 이동했다.‘꼬스꼬’ 공항에서 ‘훌리아카’ 공항으로 이동, 이곳에서 다시 육로로 ‘푸노’로 이동하여 호텔에 투숙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긴 여정을 바쁘게 소화 해야 함으로 어느때 보다 저력이 필요했다.